영상은 재미가 2.5배
안녕하세요.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동네백수의 옛날 바람의 나라 이야기 입니다.
제가 오늘 준비한 영상은
손가는 대로 적어보는 주저리들입니다.
사실,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데
사방팔방 튀는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주제를 정하는게 무척 어렵다고 느껴집니다.
거두절미하고 바람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어떠한 시행착오를 겪어 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영상을 끝까지 시청해주세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최초의 바람의 나라 이벤트를 거론할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한대전입니다.
당대 지존들의 경험담에 반드시 등장하는 소재로
당시 1등 상품인 최강의 무기 도룡보도를 손에 거머쥐기 위해
운영자의 입회하에 난다긴다 하는 내로라하는 당대 고수들이 참가하여
서로 자웅을 겨루었던 최초의 이벤트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해당 이벤트가 발전하여 만들어진 것이
PK에 패널티가 없는 장소인 무한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오래된 기록중 하나인 진사멸파검님의 옛날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넥슨에서 무한대전장을 만들엇죠
지금의 무한대전장과는 다릅니다...
옷을 그때 염색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요
암튼 그때 무한장은 지금의 무한장보다 4배정도 더 큰 필드에
나무도 잇고 바위도 잇고 다리도 잇고
그리고 북쪽과 남쪽 끝에는 집이 한채 잇엇죠 거기서 팀이 모이는겁니다...
처음 무한대전은 역시 개선할점이 많앗음다
도사가 해골을 막 소환해놓고 그걸로 공격하면 격수가 접근하지 못하고...
그래서 그 이후로 8마리까지만 소혼할 수 있게 바뀌었습니다.
확실히 사진으로만 보다가 옛날 고수들의 경험담을 곁들이니
해당 사진들에 어떠한 스토리가 가미되어있는지 즐거운 상상이 가능해집니다.
당대 고수중 한명인 적귀님이 써주신 무한대전 이야기도 살펴보겠습니다.
그때 매일밤만 되면 빨간물약을 엄청 많이 걸고,
무한대전을 열어주었던 형님이 계셨습니다.
아이디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당시에 무한대전을 열여주신 형님이,
참가자들의 체력과 마력을 토대로 밸런스맞게 팀을 짜주었던게 큰 역할을 했던거 같습니다.
무한장에 입장하면 팀끼리 옷의 색깔을 맞추고,
카운트 다운과 함께 시작되면
어느 팀에서 도사를 빨리 죽이냐로 승패가 갈렸습니다.
전사들은 필살기 한 번 쓰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왜냐면 체력이 10%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기원도 계속 사용하고,
가져온 녹용과 웅담도 다 먹으면서 필사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무한대전 테크닉 중에 도사의 금강불체가 끝나는 타이밍을 예측하여 잡아내는 기술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근데 테크닉이 좋은 격수는 대지의기원으로 도사를 살려내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마법을 쓸때 지금처럼 숫자키가 아니라 쉬프트 눌러서 사용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정말 힘들었지만 정말 추억에 남을만한 무한대전이었습니다.
초 단위로 싸우는 무한대전에서 쉬프트로 마법을 사용하면서 했다니
상상만해도 손가락이 아파옵니다.
또한 당시의 운영자들은 이벤트 아이디어에 대해
유저들에게 도움을 구한적이 있었다는게 확인되었습니다.
상품으로 주는 아이템들에 눈이 휘둥그레지네요.
2000년 2월 18일
바람의 나라 제 1차 모의전쟁 이벤트가 개최되었고
2000년 9월 6일 최초의 남북무한대전이 열렸습니다.
따라서 필드 위에서의 무자비한 PK가 무한대전장을 만들게된 계기가 되었고
그 무한대전을 개선하여 무한장이 탄생되었으며
무한장에서 열리는 유저 이벤트들을 토대로
남북무한대전이 만들어졌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4년에 걸친 기나긴 여정이었네요.
무한대전에 이어 두 번째로 해드릴 이야기는
지금 이라면 상상도 못하는 행동들이지만,
그 옛날 낭만이 가득했던 시대에는,
운영자들 조차도 유저들을 향해 무책임한 행동들을 일삼았던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벤트라는 명목아래
가장 안전해야될 장소에 강력한 몬스터들을 풀어 넣어
유저들을 학살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들을 말이죠.
해중이라는 몬스터로 인해 시체의 산이된 국내성 북쪽이 보입니다.
아마 이민족 침입때의 사진같습니다.
같은 시각 12지신을 보면 망퉁산과 절개라는 몬스터가
유저들을 학살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당연히 운영자들도 전체부활이라던지 전체회복을 간간히 써주긴 하였지만
그 횟수가 턱없이 부족하였고
몬스터가 잡히면 운영자들은 무책임하게 자리를 떠나기 부지기수였습니다.
다음은 국내성 남쪽에 소환된 북천황신수 입니다.
41레벨의 어느 도사는 모든 아이템과 경험치를 잃은 모습이 확인됩니다.
얼마나 놀라였는지 그의 반응으로 간접적이나마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뒤로는 자기들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깨달았단 듯이
강력한 몬스터를 소환할 때 성황당 할매도 같이 생성하여
그 자리에서 부활 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죽으면 시체가 생성된다라는 과제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넥슨측에서 내린 해답은
죽어도 아이템이 떨어지지 않는 무한장에 몬스터를 소환 풀어내는 것이었고,
이 게릴라 적인 학살극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사냥이벤트라고 생각됩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사냥이벤트는 무수히 많은 시체의 산을 쌓고서야 만들어진,
피의 역사가 서려있는 이벤트였습니다.
또한 당시의 운영자들은 가끔씩 출몰하여
앞으로 나올 아이템이나 마법들 혹은 몬스터들을 미리 보여주곤 하였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가장 베일에 쌓여있는 몬스터가
바로 거대한 4신수 형태의 몬스터들이 아닐까 합니다.
해당 몬스터들은 현재도 게임 클라이언트에 그대로 내제되어 있으며,
옛날 사설서버 개발자들이 사설서버를 만들면서 클라를 뜯어볼때
가장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몬스터중에 하나라고도 합니다.
왜냐면 너무 강력하게 설정되어 당시의 지존들이 잡을 수 없게 설계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룡, 현무, 백호는 잡아도 주는 것이 없지만
주작만큼은 용도불명의 주작의 증표라는 아이템을 준다고 합니다.
해당 몬스터들을 테스트한 시기가 3차 승급이 나오기 직전이니
아마도 3차 승급의 몬스터로써 활용 되려다 폐기된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주작의 증표가 승급의 서장으로 짐작되며
무엇보다 3차 승급할때 각 각의 신수별로 서로다른 신전을 찾아가야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4신수는 폐기되고,
그 위치를 암흑왕 및 4원소의 정령들을 대체하게 된 것입니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그럴싸해서 저 스스로도 놀라고 있습니다.
사실은 4원소의 자리에 4신수가 있어야 됐던게 아닐까요?
아니면 4원소를 처치하고 그 다음 암흑왕의 자리에
승급자의 신수에 맞게 배치된 신수를 잡아야 한다거나 말이죠.
핵심은 잡는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잡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잡기가 힘들 뿐이라면 4신수 뿐만 아니라
4원소의 정령들이나 암흑왕
4차승급때의 반고도 마찬가일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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