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0년
y2k, 엽기, 사이버 가수 아담 등..
매일 새로운 이슈가 끊이질 않았던 시대의 과도기
대한민국에 ADSL의 상륙과 가정용 PC의 폭발적인 보급으로
우리나라에 1세대 1PC 운동이 한창일때,
'엽기'라는 한 시대를 대표했던 키워드로 중무장한 B급 게임이 등장했으니
고것이 바로 강진축구 되시겠다~ 이 말이야~
그리고 강진축구는 바로 사이버 가수 아담을 만들었던
아담 소프트에서 개발자 이강진씨의 지휘아래 탄생하게 됩니다.
강진축구의 강진은 개발자의 이름을 따온 것.
2000년 10월 첫 신호탄을 쏘아올린 강진축구는
출시 하자마자 문화관광부 우수게임에 선정되며,
6개월만에 100만명의 회원을 확보,
국내 동시 접속자 6000명에 달하는 쾌거를 이뤄내고,
태국을 시작으로 대만,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해외 4개국에도 수출하며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게 됩니다.
간단한 조작과 개성 넘치는 11개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무규칙 소림축구의 재림은 당대 코드인 엽기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되죠.
강진축구의 성공은 같은 엽기를 테마로한 아이파이터, 겟앰프드 보다 1~2년 앞선 것이기에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강진축구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단 6개월만 스스로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운 뒤 바로 고꾸라져 버렸으니까요.
해외에도 수출하고 승승장구 하던 강진축구가 돌연 정액제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
첫 달 1/7이라는 괴멸에 가까운 수치로 유저수가 빠져나가고
접속자의 급감과 함께 계속된 무리한 과금정책으로
회사의 재정마저 악화되자
아담 소프트는 오픈하고 1년 7개월 만에
GG를 선언
2002년 5월 넷마블에 강진축구의 판권을 넘기게 됩니다.
넷마블에 와서는 오픈 초기 총상금 200만원 가량의 강진축구 토너먼트도 열면서
제대로 운영되는가 싶더니
또 다시 한달 5,500원의 정액제 프리미엄 프로선수 제도를 도입해
많은 유저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프로선수 제도는 자신의 캐릭터를 육성하여
각종 능력치를 부과하여 플레이 했기 때문에
밸런스에 심한 문제를 야기시켰기죠.
이와 동시에 각종 버그와 핵들이 난무하여, 제대로된 게임을 할 수 없게 되자
날이 갈수록 유저들이 급감했습니다.
그렇게 떠나가는 유저들을 붙잡지 못한채 2007년 4월 10일
강진축구의 파란만장한 생이 끝을 맺게 되죠.
2002년 앳데이터에서 개발 및 출시된 모바일 버전 강진축구
2006년 개발 단계에 있던 강진축구2 플레이메이커
결국 출시는 하지 못합니다.
그로부터 7년이 더 지난 2013년이 되고나서야 출시된
강진축구의 진짜 후속작 미니일레븐.
이 또한 2017년 문을 닫게됩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아야 아름답다.
수작이니, 명작이니 포장된 말 필요 없이
그저 강진축구를 플레이했던
지난날의 내가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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